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 부통령 (문단 편집) === [[지미 카터|1977년]] 이후: 진정한 [[2인자]]로 부상 === 그리고 [[1970년대]] 이후로 오며 대통령이 맡아야 할 사안 중 특정한 의제를 대통령이 부통령에게 위임하여 처리토록 하는 방식으로 재량권을 주는게 거의 관례가 되었다. 미국이 [[국력#s-2.4|초강대국]]이 되면서 미국의 역할과 비중도 덩달아 커지고 대통령의 업무 부담도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자,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분야를 뒷받침하면서 국정운영 전반의 안정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독재 국가의 독재자가 [[독재자#s-3|개인적으로는 격무에 시달리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권한을 위임해 주는게 효율적인 것도 사실이고, 독재 국가도 아니니 위임 좀 해 준다고 정권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원래라면 대통령이 맡아야 할 국가의 막중한 정책 결정권을 위임해 주는게 다른 사람이라면 [[비선]] 인사라고 욕 먹을 수도 있지만, 둘 다 같은 선거로 뽑힌 이상 부통령의 정당성은 대통령 본인에 준하는 수준이므로 딱히 꿀릴 것도 없고 대통령 유고 및 궐위시 곧바로 대통령에 취임할 인재 중의 인재를 단순히 놀리는 건 그냥 혈세 낭비일 뿐이다. 그래서 이 시점부터 부통령의 실질적인 역할도 필연적으로 늘어났다. 얼마나 위임해 줘야 한다는 제도는 여전히 없어서 부통령이 보유하는 실권의 수준이 대통령 마음이긴 하지만, 각자가 가진 권한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예전처럼 병풍 수준은 아니다. 이렇게 부통령의 역할이 커지면서, 대통령 후보들은 부통령을 지명할 때 본인의 단점을 커버해줄 수 있는 후보를 주로 지명하게 되었다. 보통 대통령 후보가 정치 경력이 긴 후보라면[* [[존 매케인]], [[조 바이든]] 등.], 정치 경력이 짧은 신성에 가까운 정치인을 부통령으로 지명하며, 반대로 대통령 후보가 정치 경력이 짧은 신성[*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이라면 대개 정치 경력이 긴 정치인을 부통령으로 지명한다. 예를 들어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늙은이 이미지에 고생하던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 후보는 젊은 [[댄 퀘일]]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진보적 입장이 뚜렷했던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는 보수적이고 경제 경험이 풍부한 로이드 벤슨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1977년]] [[지미 카터]]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부통령의 실권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카터는 [[조지아 주|조지아]] 주지사 출신으로 [[워싱턴 D.C.|워싱턴]] 중앙 정계에서의 경험이 일천했기 때문에 [[미네소타]]의 3선 상원의원이었던 부통령 [[월터 먼데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외에도 먼데일은 잦은 외교 순방과 대통령과의 사적 친분 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부통령'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버락 오바마|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바이든]] 부통령, [[도널드 트럼프|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펜스]] 부통령 등 현대 미국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당내 출신의 중량감 있는 2인자+조언가형''' 부통령의 선구자가 바로 먼데일인 것. [[웨스트 윙]]에 부통령 집무실이 처음 생긴 것도 카터 임기 중이었다. 클린턴은 [[앨 고어]]에게 당시 미국경제 최대의 화두였던 신경제(New Economy)의 핵심인 정보기술산업(IT)과 관련된 업무결정권을 상당부분 위임하였다. 앨 고어의 경우는 2000년 대선에서 당내 보수파이자 후에 무소속으로 등장하는 유태계의 리버만을 러닝 메이트로 선정했다. 2004년, 부인이 대기업 오너 집안이었던 동부 지역 부자 출신 존 케리 대통령 후보는 노동자들과 친한 서민 이미지의 존 에드워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지 W. 부시]] 시대의 [[딕 체니]] 부통령은 실세 부통령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미 당선 이전에 [[아버지 부시]] 산하에서 국방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부시로부터 [[테러와의 전쟁]] 수행에 있어 광범위한 권한을 위임받아 활동하였다. 심지어는 아들 부시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은 그냥 얼굴마담이고 딕 체니가 실권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니의 권한은 매우 컸다. 특히 딕 체니는 아버지 부시 때부터 함께 했던 인물인 만큼, 아들 부시로서는 그를 중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다만 백악관 내 실상을 아는 사람들은 "딕 체니가 아들 부시의 커피 심부름을 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을 것이다"라면서, 의외로 아들 부시가 최고통치자인 것은 분명했다는 증언이 많다.[* 일례로 부시는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에도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고려해 강경파인 딕 체니를 억누르며 무리한 반격에 반대했었다.] 오바마 때는 경선 2위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부통령으로 고려되었으나 대신 [[국무장관]] 자리를 주었고, 부통령직은 7선 연방상원의원[* 7선 상원의원으로 뽑히고 나서 부통령 지명을 받는 바람에 선출된지 의원직에서 15일만에 사퇴했다.] [[조 바이든]]이 뽑혔다. [[존 매케인]] 진영에서는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히든 카드로 내세웠고, 효과를 보는 듯 했으나 [[삽질|그녀의 망언과 멍청함이 드러나는 여러 행동으로 오바마-바이든을 추격하기는 개뿔, '''지지도를 더 깎아 먹었다.''']][* 대략 20년 전 1984년 [[월터 먼데일]]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제럴딘 페라로를 여성 러닝메이트로 삼았을 때도 역사적인 참패를 겪었다. 카터 행정부의 실정을 잊지 못한 국민들의 감정, 레이건 행정부 들어서 잡힌 인플레이션과 상처를 지우고 회복되는 경제 등으로 민주당에 불리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나름 부통령 후보였던 페라로의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케인이 뽑은 [[사라 페일린]]은 겉으로만 봤을 때에는 꽤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주지사]] 직을 경험해본 인물이었고, 싱글로 아이를 키웠기에 강인한 여성 이미지도 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케인의 늙은이 이미지를 상쇄할 젊은 이미지도 있었다. 또, 여성을 러닝메이트로 삼는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당시 매케인은 노인들의 지지는 확고했지만 고령+꼰대 이미지 때문에 여성과 젊은 층의 지지는 바닥이었다. 이 상황에서 젊고 명석해보이는 페일린을 지명하면서 아주 잠깐 오바마-바이든과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을만큼 인기가 올라갔다. 문제는 페일린이 아들 부시가 똑똑해 보일 정도로 상상초월 수준으로 멍청했다는 것. 그녀의 활약상을 보고 싶다면 [[사라 페일린]] 문서를 참조.] [[버락 오바마]]의 부통령인 [[조 바이든]]도 국제관계 및 외교 분야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대통령과 업무를 분담하였다.[* 바이든은 존 케리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국무장관직을 미리 제안 받았을 정도로 원래 외교통이었다.] 이후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들어오면서 영향력이 많이 약화되었지만 오바마 행정부 당시 복잡한 외교문제를 결정할 때는 오바마에 비해서 바이든이 적지 않은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은 미국 역사상 5번째로 어린 만 29세에 정계에 진출하고 핵무기 감축 협상단에 끼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브레즈네프]] 서기장을 만나는 등([[1942년]]생, [[1972년]] 당선)의 포스를 보이면서 기대를 제법 받았으나 국회에 나가서 오바마케어 관련 연설을 하는데 "[[fuck|Fucking]] great"[* 그러니까 [[대한민국 국회]]에서 [[국무총리]]가 연설하면서 [[씨발|쌍시옷이 들어가는 걸쭉한 육두문자]]를 섞어서 연설했다고 생각하면 된다.]발언을 하거나 [[코소보 내전]] 당시 '''"[[세르비아]]를 점령하고 [[독일]]이나 [[일본]]식으로 점령군 사령부를 세우자."'''는 등의 엽기적 발언으로 이미지가 좀 망가졌다. 그래도 '''실무 능력은 최상급'''이다보니 이제는 '쯧쯧 노인네 저거 또 저러네'라고 넘겨주는 분위기. 하지만 정가에선 계속되는 바이든의 실언으로 오바마의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2012년 선거에서는 부통령을 [[힐러리 클린턴]]으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떡밥도 나돈 적이 있었다. 그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 역시 2인자+조언자형 부통령으로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에서 아웃사이더라 당 내부 사정에 매우 어둡기 때문에 백악관의 비서진과 부통령, 각료들이 대통령의 추구하는 가치, 노선, 정책과 의중을 잘 파악하면서도 당내 사정에 밝고 당의 가치, 노선, 정책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통령은 상원의장을 겸하기 때문에 의회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 대통령과 야당 또는 대통령과 집권당 내부의 불화로 정국이 꼬일 때 경륜이 풍부하거나 당의 가치와 노선, 정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인사가 부통령이면 그가 막후에서 조정하여 정국을 풀어내는 사례도 종종 있다. 펜스 부통령의 경우 공화당의 전통적인 가치와 노선, 정책을 신봉하고 [[인디애나 주]] 연방 하원 6선에 해당 주의 주지사를 지내 당내 사정에도 밝을 뿐만 아니라 당내에서도 인망이 높아 트럼프를 보좌하는 부통령으로는 최고의 적임자였다. 심지어 트럼프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폴 라이언]] 하원의장[*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였고 지명 당시는 미 연방 하원의 예산위원장이었다.]도 선거 당시 펜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고 하자 트럼프와 펜스에게 큰 신뢰를 보였다. 당선 직후에 정권인수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새정부 출범을 주도하여 실세로 군림했으며 트럼프와 의회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면서 그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있다. 때때로 트럼프를 대신해 외교 분야에서의 업무를 위임받아 이를 수행하기도 한다. 2017년 3~4월에 한반도에서의 긴장이 높을 때 한국과 일본을 방문하여 북한의 도발을 억제한 점이 그 사례다. 민주당의 비슷한 사례로는 케네디의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있는데 여기도 케네디의 젊은 나이로 당 내 파워가 약한 상황에서 노련한 존슨이 정치인들과 협상을 맡은 방식으로 업무를 양분했다.[* LBJ는 텍사스에서 6선 하원의원, 3선 상원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미국]]에서 대유행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문에 [[유세]]를 나가는 등 외부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대통령이 코로나 대응을 하지 못하게 됐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에 관한 모든 통제권한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한테 위임하는 행정명령에 [[2020년]] [[3월 1일]] 서명하였다. 2020년 3월 1일 이후 펜스 부통령이 [[백악관]] 코로나 상황실에 상주하며 모든 일처리를 도맡아 하는 등, 그야말로 역대급 업무와 책임에 파묻혀서 임기 마지막 해를 보냈다.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직에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는 대통령직 당선인인 [[조 바이든]]이 워낙 고령이라 바이든 본인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외교]], [[안보]] 업무만 책임지고 나머지 미국 내정 전반을 해리스 부통령한테 위임할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은 [[인권]] 사업에 관심이 많아 이 분야를 책임질 것으로 전망 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